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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퇴행 [토르: 러브 앤 썬더]

펭더 2022. 7. 13. 15:08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토르: 러브 앤 썬더.

2022년 7월 6일에 개봉했다. 

[인피니티 워] 이후 몰락하는 MCU의 실태와 대중이 PC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01. 빈약하고 허술한 액션씬.

영화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등장인물들과 함께 시작한다. 

가오갤처럼 가볍고 위트 있는 농담으로 가득 차 있지만, 몰입을 방해한다. 

영화의 '유쾌한 감성'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아무튼 토르랑 가오갤 멤버들이 우주를 돌아다니고 있었음"

이라거나, 

"대충 토르랑 가오갤 멤버가 우주를 돌아다니는 짤"

정도가 되겠다. 꽤나 긴 시간을 투자하고 전투씬까지 포함되어있다.

문제는 이 장면이 꽤나 길게 느껴진다. 이는 해당 장면이 지루하다는 뜻이다.

액션 영화에서 전투 장면이 지루하다니.

전투씬에서 뜬금없이 등장한 패러디..


02. 몰입을 방해하는 연출. 

[아이언맨]에서 부터 [어벤저스: 엔드게임]까지.

마블은 22편의 영화를 통해 수많은 복선을 설치하고, 해소해왔다.

이러한 복선과 세부서사들은 얽히고설켜 독자적이고 섬세하며 치밀한 세계관을 구축했다.

물론,관객이 MCU라는 세계관을 수용하고, 몰입하는데 방해되지 않는 화려한 CG, 멋진 슈트..

이 역시 MCU의 성공 비결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 보여준 등장인물의 복장, 연출 등은 이전의 MCU영화와 비교하기 무색하게 허술하다.

솔직히, 제우스의 복장과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단발적인 출연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MCU에 그리스 신화가 편입됨을 암시하는 쿠키영상은 다른 의미로 큰 충격이자 반전이었고 MCU에 대한 실망이었다.


03. 유쾌하지 못하고 유치한.

지난 시간 동안 MCU가 이룩한 가장 큰 성취는 '관객의 히어로 영화에 대한 인식 변화'일 것이다.

'애들이나 보는 영화'를 누구나 몰입해서 즐길 수 있는 영화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그렇지 않다. 이건 '애들이나 보는 영화'라고 느껴질 만큼 유치하다. 

MCU는 스스로 이룩한 쾌거를 집어던지고 과거로의 퇴행을 선택했다.

 

결말이 뻔한 것은 히어로 영화의 고질적 단점이자 장르적 한계이니 논외로 치더라도, 

과정의 즐거움과 화려한 볼거리가 주는 즐거움 역시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영화는 끊임없이 유쾌함이란 포장지로 유치함을 가려보려 하지만, 

토르를 연기하는 크리스 헴스워스가 안쓰러울 정도로 유치하다.


04. 오만과 불편.

캡틴 마블에서부터 이어져온 MCU의 PC적 행보. 

PC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마블의 행보는 다소 폭력적이지 않은가.

10년을 투자한 서사의 종지부와 역대급 빌런과의 싸움을 다룰 [인피니티 워] 직전에 [캡틴 마블]을 개봉하여

어딘가 서사에 어울리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끼워놓더니,

이번 영화에선 더 폭력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관객에게 특정 사상을 주입하려 한다. 

"자신은 '여자'토르가 아닌 '마이티 토르'라며, 그게 불편하면 제인 포스터 '박사' 라 부르라"

말하는 장면은 인위적이고 작위적이다. 

영화 상에선 제인 포스터가 빌런을 향해하는 말이지만, 

해당 대사는 관객을 향해하는 대사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세상에. 관객에게 명령하는 영화라니. 그런 영화가 MCU소속 영화라니.

이런 오만한 방식은 MCU가 히어로를 탄생시키던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MCU는 원래 오랜 시간에 걸쳐 히어로의 서사와 히어로 개인의 갈등과 고뇌 등을 보여주며

끊임없이 관객을 설득하고 회유하며 관객 스스로가 히어로 자체에 몰입하도록 유도했다.

 

내부적으로 어떤 판단을 해서 이번 영화와 같은 방식을 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MCU는 이전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관객이 히어로의 서사를 수용하도록 기다릴 시간과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 마이티 토르는 '본드걸'이나 '배트걸' 같은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가지는 존재임을 선언하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말하자면 '여성 히어로의 탄생'을 선언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퇴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후 본격적인 여성 히어로의 서사를 다루는 솔로 무비가 개봉해도 관객들이 수용하기에 거부감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블랙 팬서]라는 단 한 편의 영화로 관객들이 '흑인 히어로'를 수용하도록 만든 마블이 이런 방식을 택하다니.

사려 깊은 방식으로 섬세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설계된 스토리.

몰입에 방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연출로 가득 찬 영화가

처음부터 '여성 히어로'의 탄생을 다루었다면,

반발심과 실망을 느끼는 게 아닌 또 한 번 마블 영화에 기대가 생길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